위베르 드 지방시
1927년 프랑스 보베(Beauvais)라는 귀족집에 지방시가 태어납니다. 풍요로운 가문 덕분에 일찍이 예술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또한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술, 드로잉, 패션까지 그는 어릴 때부터 패션디자이너가 꿈이었다고 합니다. 1945년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에콜 데 보자르(파리 국립미술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순수예술을 전공을 하였고, 당시 프랑스의 다양한 부티크에서 일하면서 실력을 쌓았습니다. 1952년 02월 02일 자신의 이름으로 GIVENCHY의 첫 부티크를 오픈하면서 첫 번째 컬렉션을 개최하게 됩니다. 지방시는 "단순히 몸매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닌, 여성들의 몸매에 옷을 맞추어야 한다"라고 할 정도로 기준을 세워 디자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은 여성의 절제미에 세련되고 우아함으로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디자인의 세계는 그가 좋아하는 발렌시아가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은 유명한 영화 "로마의 휴일"의 다음 작품 "사브리나"를 준비하기 위해 파리로 떠나게 됩니다. 사브리나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시골여인이 세련된 여성으로 변신하여 돌아오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오드리 헵번은 이러한 이야기의 의상은 자신이 직접 찾아 봐야한다며 사브리나의 감독에게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감독은 이를 허락하여 의상을 구하기위해 홀로 파리로 향했습니다. 그녀가 파리에 도착하여 처음 찾아간 곳은 당시에도 유명했던 발렌시아가 였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로마의 휴일이 아직 상영되기전이었고 일정도 없었기 때문에 인지도가 없었던 오드리 햅번은 발렌시아가로부터 거절을 당하게 됩니다.
당시 위베르 드 지방시는 유망한 신인 디자이너였고 오드리 헵번도 그의 디자인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1953년 그녀는 지방시 매장에 방문했지만 유럽에서 유명하지 않았던 그녀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직원의 안내로 지방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방시는 그녀를 미국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캐서린 햅번인 줄 알았으나 직접 만났을 때에는 20대의 마른 젊은 배우인걸 보고 실망을 했습니다. 그래도 지방시를 만나게 된 오드리 헵번은 그에게 자신의 새 영화 사브리나를 위해 옷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지방시는 그녀에게 영화작업은 할 수 없다며 거절을 하게 됩니다. 포기하지 않던 오드리 헵번은 지방시를 저녁식사에까지 초대하며 새로운 드레스가 아닌 이전 컬렉션 드레스라도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지방시는 지난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드레스 중에서 선택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영화 사브리나에 사용될 드레스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검은색 슈트, 하얀색 드레스, 검은색 칵테일 드레스 이렇게 3개의 의상을 영화에 쓰게 되었습니다. 지방시의 지난 시즌의 드레스였지만 오드리 헵번을 위해 만든 것처럼 오드리 헵번의 잘록한 허리와 몸매에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이렇게 위베르 드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의 인연은 시작됩니다.
최고의 파트너
당시 패션 하우스에서 영화에 의상을 협찬한 건 최초의 일이었고 오드리 헵번으로 인하여 지방시의 의상은 인기가 많아졌고 오스카 최고의 의상상을 받게 됨으로써 둘에게 최고를 선사하게 됩니다. 이후 그와 그녀는 당시 의상 트렌드를 주도해 나갔습니다. 지방시는 최고의 패션 하우스로 이름을 알려지게 됩니다. 1956년에는 오드리 헵번의 영화에서는 디자이너 지방시의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할 정도로 오드리 헵번과 지방시의 신뢰는 컸습니다. 1957년 하오의 연정, 1961년 티파니에서 차임을, 1963년 샤레이드, 1966년 백만 달러의 사랑 등 8편의 영화와 오스카 여우주연상의 의상까지 함께하여 진정한 파트너십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드리헵번의 웨딩드레스까지 만들 주기도 했으며 "그는 나에게 룩과 다정함과 실루엣을 선물했다"라고 오드리 헵번이 얘기했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노년에 암에 걸려 스위스 자신에 집에 돌아갈때 지방시는 개인 비행기와 의료장비를 지원해주었습니다. 지방시는 1993년 01월 20일 오드리 햅번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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