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야기 / / 2023. 1. 21. 21:23

오메가 손목시계 도전과 모험의 상징

007 제임스 본드의 시계이며 올림픽 공식 타임 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오메가 시계는 인류 역사의 길이 남을 달 착륙도 함께 할 정도로 정확도와 도전 정신을 내세우는 완벽한 시계입니다. 스위스 대표 시계 브랜드 스와치 그룹의 오메가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메가 씨마스터 손목 시계

 

표준화된 최초의 무브먼트 오메가

1848년 당시 23세였던 루이 브란트는 스위스의 라쇼드퐁에 포켓 워치를 조립하는 공방을 만듭니다. 루이 브란트는 시계 장인들에게 부품을 구입해 조립한 후 완제품을 만들었고 자신의 이름으로 유럽 전역에 시계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부품과 워치 메이커로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루이 브란트의 시계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명성은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졌고 루이 브란트가 사망한 후 그의 두 아들인 루이 파울 브란트와 세자르 브란트가 공방을 물려받게 됩니다. 형제가 공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외부 부품의 품질 관리였습니다. 해결 방법을 고민하던 두 아들은 자신들의 공방을 완제품 조립은 물론 부품까지 모두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면서 이를 극복합니다.

 

1894년에는 당대 최고의 시계 장인이었던 프랑소아 슈빌레가 발명한 19 리뉴 포켓 칼리버라는 무브먼트를 생산하게 됩니다. 19 리뉴 칼리버는 시계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무브먼트 중 하나입니다. 원래 시계의 무브먼트들은 표준화된 부품이 아니라 전부 수작업으로 소량 생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장 났을 때 그 브랜드의 부품이 없으면 아예 고칠 수가 없는 시스템이었죠. 그런데 19 리뉴 칼리버는 표준화된 부품을 사용했고, 누구라도 시계를 분해하여 부품을 교체할 수 있고 수리가 가능한 최초의 무브먼트였습니다. 그 무브먼트에는 기술의 완성이라는 의미로 그리스 문자의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데 이 무브먼트의 이름으로 오메가가 1903년에 회사 이름이 되었습니다.

 

오메가 올림픽 공식 타이머 시계

오메가는 1919년 칼리버 21로 첫 천문대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화려한 전적을 이어나갔습니다. 오메가는 총 8번의 천문대 기록을 경신했고 1952년에 첫 출시된 컨스텔레이션 케이스백 시계에는 이 기록을 상징하는 8개의 별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금도 오메가의 컨스텔레이션 다이얼에 별이 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올림픽은 전 세계에 자신들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고 세계에서 가장 정확도 높은 시계를 만드는 오메가는 올림픽의 모든 경기에서 시간을 측정하는 공식 타임키퍼가 됩니다. 0.1초 아니 0.01초의 미세한 시간 차이로도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 게다가 올림픽 같은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타임키퍼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시간 계측에 대한 노하우와 전문성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1952년에는 1천 분의 1초 시간 측정기를 최초로 발명해 스포츠 기록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외에도 오메가는 수영, 육상, 요트, 골프,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경기에서 공식 타임키퍼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최신 측정 장비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오메가 달에 착륙하다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도착한 닐 암스트롱이 남긴 말입니다. 바로 그때 그의 손목을 감싸고 있던 시계가 오메가 스피드 마스터입니다. 스피드 마스터는 원래 모터스포츠에서 시간이나 평균 속도를 계측하기 위한 도구로 개발되었습니다. 시계 베젤에 타키미터 스케일을 새겨 넣은 최초의 손목 시계이기도 하죠. 그런 스피드 마스터가 우주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1962년 우주 비행사 윌리 시라가 수성 탐사 프로그램 시그마 7 미션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2세대 스피드 마스터 CK2998 모델을 착용하고 우주로 날아가게 됩니다. 이후 미국과 러시아가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인 1964년 나사는 유인 탐사에 사용할 시계를 공식적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우주공학 엔지니어인 제임스 레이 거는 우주 탐사 장비의 준비와 선정 페스트를 담당했습니다. 당시 여러 개의 시계 브랜드가 나사의 엄격한 테스트에 도전했고 끝까지 살아남은 시계는 오메가의 스피드 마스터뿐이었습니다. 그리고 1965년 3월 나사는 오메가 스피드 마스터를 모든 유인 탐사선에 적합한 타임피스로 공식 선언했습니다.

1969년 아폴로 11호와 함께 스피드 마스터는 달에 착륙한 최초의 시계가 되었고 문워치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의 아폴로 탐사 미션을 수행한 우주인 찰스 듀크 현재까지 살아있는 전설로 기억되는 우주 비행사 버즈 올드린도 오메가 스피드 마스터의 앰버서더였습니다. 실제로 스피드 마스터는 자칫 우주에서 영영 돌아올 수 없었던 우주 비행사들을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됩니다. 1970년 우주로 날아간 아폴로 13호의 산소 탱크가 폭발하면서 승무원들은 남은 동력을 비축하기 위해 대부분의 전원을 꺼야 했습니다. 지구로 궤도 수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정확하게 딱 14초 동안만 엔진을 가동해야 했는데 전자장비를 일절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주 비행사들은 오직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크로노그래프 기능에만 의지해 연소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했고 그 덕에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오메가는 그해 10월 나사로부터 실버 스누피 어워드를 수상했는데요.

 

스위스 시계를 대표하는 스와치 그룹의 탄생

오메가는 시계가 소수를 위한 사치품으로 머물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스위스에서 생산한 높은 품질의 기계식 시계를 전 세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오메가는 최고의 품질을 구현하면서도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로 유명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스와치 그룹의 핵심 브랜드로서 자본력과 생산력을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스와치 그룹은 오메가를 중심으로 브레게, 블랑팡, 론진, 헤밀턴, 티쏘 등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스위스 워치 산업의 대표 그룹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시계 생산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스위스 시계 산업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고 미국 영국 독일 등의 대량 생산 시스템과도 경쟁해야 했습니다. 1920년대 대공황의 여파도 있었고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업계 1위였던 오메가는 티쏘, 르마니아 등의 주요 기업을 합병하여 SSIH라는 거대 기업으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1931년에는 스위스 부품 및 무브먼트 제조사들이 합쳐져서 ASUAG를 결성하는데 SSIH와 ASUAG 이 두 진영은 1970년대 쿼츠 파동 위기를 겪으면서 1983년 합병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스위스의 경영 전략가 니콜라스 하이에크가 CEO로 취임하고 1998년 스와치 그룹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됩니다. 오메가를 비롯해 스와치 그룹사의 시계가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시계의 본질적인 가치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시계에 진심을 담은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스마트 워치 시대 기계식 시계의 품질에 집중하다.

스위치 그룹의 오메가의 퀄리티와 디테일을 높이는 것은 스위스 시계 산업의 전체 품질을 높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메가가 새로운 기준점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은 2015년 도입한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애플 워치 출시와 함께 스마트워치 시장이 열렸고 스위스 시계 제조사들은 저마다 새로운 변화에 대행했는데 일부 브랜드들은 스마트 워치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메가는 어땠을까요?? 오히려 기계식 시계의 가치와 본질에 더 집중했다고 합니다. 오메가는 스위스 개츠학 연방학회와 손잡고 2015년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 체계를 도입했고 2018년 11월 모든 제품의 품질 보증 기간을 5년으로 연장하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구축했습니다. 결국 본질에 집중한 오메가의 움직임에 스위스 시계 전체의 품질 향상과 성장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아서 현재 스마트 워치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브랜드로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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