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의 400km 여정
루이비통은 1821년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납니다. 14살에 아버지의 재혼으로 홀로 집을 나오게 됩니다. 그는 작은 마을을 떠나 파리로 가고 싶었으나 파리까지의 거리는 400km 되었기에 쉽게 갈 수 없었습니다. 루이비통의 끈기는 여기서 보여줍니다. 온갖 잡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조금씩 걸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무일푼으로 2년 후 1837년 16살인 그는 파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루이비통은 파리에 도착하여 당시 생제르맹 지역에서 가장 유명했던 무슈 마레샬이라는 가죽 가방 가게 수습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가죽을 다룰 줄 몰랐던 루이비통은 처음엔 짐을 싸는 패커로 일하게 됩니다. 가방가게의 대부분의 고객은 귀족들이었고 귀족들의 가방을 섬세하게 포장한 루이비통은 귀족들 사이에서 포장 전문가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짐 싸는 재능은 나폴레옹 3세의 외제니 황후 눈에 띄게 됩니다. 황후 밑에서 무려 17년이나 패커로 일한 그는 3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오랜 신뢰와 친분으로 외제니 황후는 루이비통의 재능을 지원해 주게 됩니다. 이렇게 1854년 자신의 이름을 건 루이비통은 첫 매장을 오픈하게 됩니다. 루이비통의 첫매장은 당연히 그의 전문분야인 포장전문가게 였습니다. 이미 포장전문가로 귀족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게는 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경제 호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녔기에 시대에 맞게 루이 비통의 포장가게는 많은 돈을 모으게 됩니다.
세상에 없던 여행용 가방과 모노그램 패턴의 완성
패커로 매장까지 운영하던 루이비통은 당시 포장가방에 대한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가방의 무게는 무겁고 가방을 하나씩 위로 쌓기 어려운 디자인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를 보완하게 위해 디자인하여 가방을 자체 제작을 했습니다. 바로 루이비통 여행용 트렁크 가방의 시작입니다. 가방은 캡버스를 소재로 가볍고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짐을 포장할때도 여러 개를 가방을 마차에 올릴 때도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캔버스에 풀을 먹여 방수처리가 된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개발하여 여행 중 비가 와도 짐이 문제없도록 했습니다. 가방내부는 패커로서의 경험을 살려 짐의 종류와 크기별로 정리할 수 있도록 칸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한참뒤인 1954년에는 테니스채와 악기가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트렁크도 만들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를 위해 루이 비통이 스케이트 케이스를 만들어 줄 정도로 아직까지 루이비통의 이러한 특별한 트렁크 케이스의 역사는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루이비통 여행용 트렁크의 성공으로 모조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에 그와 루이비통의 아들 조르주 비통은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로고와 격자무늬 패턴을 개발하게 됩니다.
100년간의 가족 경영과 현재
1892년 창립자 루이비통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아들 조르주 비통이 바로 경영을 하면서 루이비통을 확장하기 시작 합니다. 먼저 조르주 비통은 아버지 루이비통의 LV와 그 사이에 꽃,별무늬를 반복해서 넣어 아직까지 루이비통의 시그니처로 남아있는 "루이 비통 모노그램 패턴"을 완성합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격자무늬 패턴에서 자체 개발한 "모노그램 패턴"으로 모조품과 강력하게 차별화시키게 됩니다. 조르주 비통의 아들 가스통 비통이 경영권을 이어받고 딱딱한 트렁크만 제작하던 루이비통은 다양한 가방 라인을 선보이며 사업을 확장하게 됩니다. 현재에도 유명한 루이비통의 키폴백, 스피디백은 모두 이때 만들어지게 됩니다. 계속해서 가족경영을 하던 루이비통은 1980년대부터 인기와 함께 매출이 하락하게 됩니다. 1987년 루이비통은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엣샹동(주류)&헤네시 합병하여 LVMH그룹을 만들게 됩니다. 이 세 개의 회사가 서로 다른 분야의 회사이다 보니 경영에서 분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모엣샹동&헤네시는 기네스와 담합을 하며 루이비통도 크리스찬 디올의 모회사 경영자인 아르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미 크리스찬 디올의 인수로 패션에 대한 미래와 안목이 있던 아르노는 전재산을 동원하여 LVMH의 지분을 인수하게 됩니다. 결국 아르노가 LVMH의 지분을 40프로 이상 인수하면서 LVMH는 현재까지 회장으로 있는 아르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100년 넘게 명품 여행 가방을 제작하고 운영하던 루이 비통 가는 더 이상 경영에서 볼 수 없게 됩니다. 현재 LVMH는 모회사인 크리스찬 디올 아래 루이 비통, 펜디, 지방시, 겐조, 마크 제이콥스, 셀린느 등 50개의 패션, 향수, 시계, 주류등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한 거대 기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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