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위해 의대에서 백화점까지
1934년 이탈리아의 북부 피아제찬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태어났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태어나고 얼마뒤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전쟁으로 생활고를 겪게 됩니다.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주말엔 극장에 한 번씩 가기도 했습니다. 호기심이 많던 그는 배우들의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여자 친구들에게 차림새를 정돈해주고 머리도 만져주고 바지도 수선할 만큼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정리했습니다. 이러한 친구들 모습을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깔끔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전쟁과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 그는 디자이너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당시에도 유망했던 밀라노 의대에 진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았던 의대였기에 그는 얼마뒤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됩니다. 의대도 안 다니고 군대도 제대한 그는 23살에 생계를 위해 우연히 백화점 광고 부서의 구인 공고를 보고 평소 사진에 취미가 있던 아르마니는 자신이 찍은 사진의 포트폴리오로 합격하여 광고 부서의 사진사로 취업을 하게 됩니다. 백화점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던 아르마니는 남성복 관리 담당자를 마지막으로 1963년 백화점에서 나오게 됩니다.
디자이너 아르마니로서의 출발
백화점 근무 당시 아르마니의 안목과 경험을 인정받아 상사에게 디자이너 니노 세루티를 소개 받습니다. 니노 세루티는 마침 남성복 라인을 론칭하는데 필요한 보조 디자이너로 아르마니 고용합니다. 이렇게 아르마니의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니노 세루티가 선보인 남성복 라인 "히트맨"은 아르마니의 디자인 감각으로 성공을 하게 됩니다. 이때 "히트맨"은 남성에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보디라인을 강조하여 디자이너로서 아르마니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아르마니는 성공에 힘입어 15년 동안 쉴 새 없이 니노 세루티에서 디자이너로서 감각과 경력을 계속해서 쌓습니다. 아르마니가 40세가 되던 때 수입하는 일을 하던 세르지오 갈레오티라는 파트너는 아르마니에게 "당신은 특별하다"라며 개인 브랜드를 론칭할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1975년 니노 세루티에서 나와서 아르마니와 세르지오 갈레오티는 함께 자본금을 마련하여 아르마니를 론칭하게 됩니다. 아르마니는 디자인을 세르지오 갈레오티는 경영을 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브랜드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처음부터 큰 입지가 없던 아르마니 브랜드는 다른 브랜드의 외주 디자인을 하며 아르마니 브랜드를 지켜 갔습니다. 동시에 컬렉션을 준비하며 디자이너로서 엄청난 작업량을 보여줍니다. 그해 1975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실제 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남성의 어깨를 과시하기 위한 어깨 구조물과 내부의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여 자연스러운 보디라인을 강조했으며 여성 사회인을 위한 심플하면서 우아한 디자인을 선보이게 됩니다.
살아있는 전설 아르마니 브랜드
어릴때부터 사진이 취미였고 다양한 부서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아르마니는 수익의 많은 부분을 광고에 투자를 했습니다. 아르마니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확실하게 선보이기 위해 사무실을 역사가 오래되고 유서 깊은 이탈리아 스타일의 건물로 이사를 가고 화려하게 장식하게 됩니다. 이탈리아 브랜드로서 품격을 살리기 위해 많은 투자와 정성을 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에 아르마니 브랜드는 미국의 리처드 기어부터 시작해서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아르마니를 입게 됩니다. 아르마니 브랜드의 성공에도 그는 디자이너로서 계속해서 노력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 사람들에게 옷을 어떻게 입는지 보여주러 왔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크리스찬 디올에 이어 타임지 표지에 25년 만에 유럽의 디자이너가 되며 아르마니는 디자이너로서 정상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사업 파트너였던 세르지오 갈레오티가 세상을 떠나면서 경영에 빈자리가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아르마니는 직접 경영을 하며 외주업체의 지분을 인수하고 생산과 유통에 직접 참여하여 우수한 경영 실력을 보여줍니다. 그는 아르마니 브랜드로 7조 원이라는 부를 가졌음에도 거만하지 않고 "디자이너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디자인하는 스타일리스트일 뿐 숭배하지 마라" 라며 그는 아르마니 브랜드 뒤에서 아직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패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인 정신이 깃든 명품 브랜드 벨루티 (0) | 2023.01.07 |
---|---|
여행용 트렁크 가방의 혁신 루이비통 (0) | 2023.01.06 |
남성 슈트의 새 역사 톰포드 (0) | 2023.01.05 |
스트릿 패션을 주도한 베트멍의 루즈핏 (0) | 2023.01.05 |
보테가 베네타 최고가 되기까지의 여정 (0) | 2023.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