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야기 / / 2023. 1. 16. 13:07

비비안 웨스트우드 멈추지 않는 펑크 패션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 (blog.viviennewestwood.com)

초등학교 교사의 잠재된 능력을 깨우다.

펑크 패션의 대표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41년 04월 08일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면화산업의 중심지였던 영국 더비셔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미술관, 책, 극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예술과 거리가 먼 아이였습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17세의 나이가 되면서 가족들과 영국 해로우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교사를 꿈꾸게 됩니다. 그래서 사범학교에 진학하여 초등학교 교사가 됩니다. 그녀는 원래 꾸미기를 좋아하고 손재주가 많아서 유행하는 패션을 따라 하며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서 교사 생활을 이어 갔습니다. 196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데릭 웨스트우드를 만나서 결혼을 하면서 아들 벤자민을 낳습니다. 평범한 생활을 해오던 그녀였습니다. 1965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 등장합니다. 로큰롤을 중요시 여기던 평범하지 않던 말콤 맥라렌이었습니다. 그는 기성세대의 문화를 깨고 로큰롤과 아방가르드 미학에 심취한 반항아였습니다. 말콤 맥라렌은 그녀의 잠재된 반항적 기질을 끄집어냅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로큰롤 정신을 표현하다.

그녀는 말콤 맥라렌을 만난 이후 데릭 웨스트우드와 이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콤 맥라렌과 진정한 커플이 됩니다. 1971년 그녀는 런던 킹스로드에 Let It Rock이라는 첫 부티크를 오픈하게 됩니다. 1970년 당시 석유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섰던 때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정은 근검절약을 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젊은이들은 순수한 펑크문화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영국 런던에서 펑크 패션은 유행을 하게 됩니다. 펑크는 시시한, 쓸모없는 등의 뜻을 가진 반항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펑크 패션은 검은색 의류, 염색한 머리, 가죽 재킷을 통해 공포, 절망, 공허를 표현하여 허무주의, 히스테리 등을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고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살기엔 너무 타락했고, 죽기엔 너무 이르다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로 부티크명을 바꾸게 됩니다. 말콤 맥라렌은 당대 최고 락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매니저가 되면서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디자인한 옷을 협찬하며 펑크 열풍을 이끌게 됩니다.

 

끝나지 않은 펑크 패션 정신

1981년 첫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이름을 건 컬렉션은 해적 문화를 조합하여 역사와 반항의 만남으로 첫 컬렉션을 채웠습니다. 런웨이 당시 음악은 말콤 맥라렌이 제작해 주며 컬렉션은 성공적으로 마치게 됩니다. 이후에 비비안웨스트우드는 반항문화와 펑크문화를 섞어 다양한 패션을 선보입니다. 1987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로부터 영감을 받은 해리스 트위드 컬렉션과 1990년 고급스러운 의상을 조합한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타탄 직물을 활용한 의류를 선보이게 됩니다. 이때 만들어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트위드와 타탄은 시그니처가 됩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현재 골드, 레드 라벨, 맨, 앵글로 마니아 총 4개의 라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골드라벨은 고급의상 라인, 레드라벨은 골드라벨의 캐주얼한 디자인의 라인, 맨은 남성복 라인, 앵글로 마니아는 캐주얼 의류라인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조합하여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브랜드로서 세계에 알린 공으로 기사 훈장을 수여받습니다. 현재에도 그녀는 기존의 패션과 문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문화의 조합으로 패션계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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