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전문 보석 세공 까르띠에
까르띠에는 160년의 역사를 가졌습니다. 1819년 화약통을 제조하던 부부 사이에서 창립자 루이 프랑세즈 까르띠에가 태어납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보석 세공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성인 된 후 까르띠에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보석 세공이었던 아돌프 피카드에게 기술을 배웁니다. 1847년 아돌프 피카드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틀리에를 까르띠에가 인수하면서 이름을 "메종 까르띠에로 아틀리에"로 바꾸며 까르띠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1850년대 프랑스혁명이 끝나고 나폴레옹 3세가 즉위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화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왕족과 귀족은 여행과 파티를 즐겨하며 보석과 액세서리의 많이 찾게 됩니다. 어느 날 나폴레옹 3세의 사촌인 마틸드 공주가 메종 까르띠에를 방문합니다. 뛰어난 세공기술과 디자인의 까르띠에 제품에 반하게 됩니다. 당시 사교계에서 유명했던 마틸드 공주가 까르띠에 제품을 가지고 다니면서 프랑스 귀족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합니다. 1950년대 말 프랑스 왕실의 공식 주얼리 납품 업체가 되면서 까르띠에의 위상은 올라가게 됩니다. 까르띠에는 파리의 중심가로 아뜰리에를 옮기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이후 가족경영을 하며 1900년대 초에는 미국과 영국에 진출하며 글로벌 브랜드가 됩니다. 1902년 영국에 진출하면서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 대관식을 위한 27개의 티아라를 주문받고 성공적으로 전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2년 뒤 1904년 에드워드 7세는 까르띠에를 영국 왕실의 보석을 공식적으로 납품을 할 수 있도록 임명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보석을 납품할 수 있게 된 까르띠에의 명성은 유럽전역에 알려지고 벨기에, 스웨덴등 많은 왕실에서 사랑을 받기 시작합니다.
비행을 위해 제작된 세계 최초의 손목 시계
세계대전이 시작되기전 유럽의 왕실과 귀족문화의 시절인 벨에포크 시대는 거리에 아름다운 복장의 신사, 숙녀가 많을 정도로 경제가 좋았습니다. 신사들은 양복 조끼 주머니에 회중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까르띠에는 숙련된 보석세공으로 탁상시계, 벽시계등 시계도 만들고 있었습니다. 루이 까르띠에의 친구인 브라질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이 비행 때 손목에서 볼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루이 까르띠에에게 부탁했습니다. 1904년 그의 이름을 붙인 '산토스' 파일럿 손목시계가 탄생합니다. 세상에 없던 손목시계를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됩니다. 1907년 스위스 시계장인 "에드몽 예거"와 무브먼트에 대한 독점 계약을 맺고 1911년 까르띠에는 본격적으로 손목시계를 양산하며 대중화시킵니다. 그리고 1919년 세계 1차 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활약한 르노 전차 Renault FT-17를 보며 디자인한 '탱크 라인'의 손목시계를 선보입니다. 정교하게 디자인되고, 가죽스트랩과 빈틈없이 이어져 있고, 현재에도 쓰이는 로마 숫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숙련된 보석 세공 기술로 시계 크라운에는 '사파이어 카보숑'을 사용하여 심플하지만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시계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제작된 시계는 1918년 "존 퍼싱" 미군 장군에게 선물을 합니다. 1년 뒤인 1919년 탱크 라인의 시계를 6개만 한정판매를 하는데 시장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1920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하며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변하지 않는 까르띠에 대한 사랑
1970년대 들어서 까르띠에는 경영권을 일반 투자자들에게 위임하게 됩니다. 전문 경영인으로 브랜드를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한 까르띠에는 리치몬드 그룹에 속하게 됩니다. 까르띠에의 명성과 인기는 유명인사들이 끊임없이 사랑하면서 열기가 식지 않습니다. 모나코의 왕비이면서 미국 할리우드 배우인 "그레이스 켈리"는 에르메스 켈리백의 주인공이며 까르띠에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모나코 국왕 "레니에 3세"가 프러포즈할 때 그녀는 국왕이 특별 주문제작한 까르띠에 반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무려 10.47캐럿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반지는 45억 원 상당이었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결혼식 당일에도 까르띠에에서 특별 제작한 티아라와 보석을 착용했다고 합니다. 티아라는 총 49캐럿과 3개의 루비로 만들어졌으며 목걸이는 58캐럿으로 만들어져 화재가 되었습니다. 또한 구찌의 재키백으로 유명한 미국 전직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그녀의 패션은 재키룩으로 알려집니다. 재키룩에는 세계대전 당시 르노 탱크를 모티브 한 사각형 모양의 '탱크 워치'를 착용했습니다. 얼마 전 2017년 재클린 케네디가 착용했던 까르띠에의 '탱크 워치'가 경매에 나왔는데 낙찰의 주인공은 미국 방송인이며 유명 셀럽인 "킴 카다시안"이었습니다. 왕실에서부터 현재 유명 셀럽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160년 역사의 까르띠에입니다.
'패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말론 향수 자연을 담은 감각적인 럭셔리 브랜드 (0) | 2023.01.15 |
---|---|
롤렉스 시계 세계 최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 (1) | 2023.01.12 |
셀린느 럭셔리 브랜드로 성공적인 변화 (0) | 2023.01.10 |
다시 부활한 트렌치코트의 명가 버버리 (0) | 2023.01.09 |
모든 여자들의 로망 에르메스 (0) | 2023.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