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야기 / / 2023. 1. 9. 18:19

다시 부활한 트렌치코트의 명가 버버리

이 시대 최고의 코트 버버리

가볍고 방수가 되는 버버리 코트의 개발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는 1835년 08월 27일 영국 브로크햄에서 태어납니다. 토마스 버버리는 동네 작은 옷가게에서 수습생을 일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옷가게에서 경력과 실력을 쌓은 그는 1857년 영국 햄프셔 주 베이싱 스토크에서 21살의 나이에 작은 옷가게를 오픈합니다. 영국의 날씨는 예전부터 습하고 비가 자주 내려 사람들은 레인코트를 자주 입었습니다. 이레인코트의 재질은 고무로 만들어서 무겁고 통기성도 없었습니다. 비 오는 날 우연히 식당에 있던 토마스 버버리는 한 손님이 겉옷을 벗는데 안에 입은 옷이 하나도 안 젖은 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옷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스목 프록'이라는 농부와 마부가 일할 때 즐겨 입던 옷이었습니다. 토마스 버버리는 이 '스목 프록'에서 착안을 합니다. 이것으로 수많은 연구와 실패를 거치며 새로운 원단을 개발하게 됩니다. 1888년 토마스 버버리는 세계 최초로 더 치밀한 밀도로 방수처리를 하고 더 가볍게 하여 '개버딘'원단을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는 바로 특허출원을 하고 '개버딘' 원단으로 방수가 되면서 더 가볍고 보온성 있는 레인코트를 만듭니다. 개버딘으로 만들어진 레인 코트로 많은 돈을 벌게 되는 토마스 버버리는 1890년 자신의 이름 버버리로 런던 웨스트 앤드에 매장을 오픈하게 됩니다. 1899년 영국과 트란스발공화국은 보어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수도 되고 가벼운 개버린 소재의 버버리의 코트를 영국 군대에서 군용 방수복으로 주문하게 됩니다. 이때 버버리에서 제작한 군용 방수복이 단추 없이 허리춤을 끈으로 묶은 '타이로켄'이라는 방수용 코트였습니다. 전쟁 중으로 이미 많은 군인들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면서 버버리는 엄청난 명성을 얻습니다.

버버리의 상징 트렌치코트의 대중화

보어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버버리 코트는 영국 왕실에서도 찾게 됩니다. 영국 왕실에서는 지정 메이커가 되면서 버버리 코트의 품격도 올라가게 됩니다. 1901년 말을 타고 있는 기마병의 그림의 '프로섬'로고가 탄생하게 됩니다. '프로섬'은 라틴어로 전진한다는 뜻으로 '개버딘'원단의 개발처럼 진취적으로 개척해 나간다는 의미로 불립니다. 버버리는 개버딘 원단을 이용하여 등산, 낚시, 캠핑등 많은 아웃도어 용품에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1911년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이 인류사상 최초로 남극에 도착했을 때 버버리 방한복과 장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영국의 "존 윌리엄 알콕" 경 또한 버버리 옷을 애용할 정도로 실용성과 기능성 모두를 갖춘 아웃도어 탐험복이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1920년 버버리의 코트 안감은 '노바 체크'를 추가합니다. 현재까지도 버버리의 시그니처가 되어 의류, 액세서리등 대부분의 버버리에 디자인되고 있습니다.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시작되었고 영군 군대는 또다시 버버리에게 군용 코트를 제작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총을 사용한 전쟁이 확대되면서 참호 전투를 하던 군대를 위해 잘 풀리지 않는 더블 단추와 어깨에 총을 메고 쓸리지 않도록 건 패치, 계급을 구별할 수 있도록 어깨에 비조, 소매에도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비조를 추가하며 업그레이드된 버버리 코트를 만들게 됩니다. 세계 2차 대전까지 끝나고 군인들은 이렇게 멋진 코트를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평상시에도 즐겨 꺼내 입으면서 버버리에서는 본격적으로 일반인에게도 판매를 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인도 입을 수 있게 된 트렌치코트는 영국의 변하지 않는 습하고 비가 자주 내리는 날씨로 많은 영국 사람들의 필수품이 됩니다.

 

 

추락하던 버버리를 다시 살려낸 한 명의 CEO

1926년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가 사망하면서 후손들에게 버버리는 맡겨지게 됩니다. 후손들은 버버리의 매출 올리는 것에 급급하여 아무 데나 많은 매장을 만들게 됩니다. 이는 영국 왕실에서도 인정한 버버리 브랜드의 가치를 떨어트리게 됩니다. 그리고 버버리 본사는 여러 나라에 상표권을 판매하게 됩니다. 특히 일본에 판매한 상표권은 '버버리 블랙 라벨'로 일본에서 생산된 버버리 브랜드 상품이지만 영국 버버리 브랜드와 가격이 달랐습니다. 또 '프로섬' 로고와 '노바 체크'무늬는 동일하게 사용되어 패션시장에 버버리가 흔해지면서 패션 시장이 교란되기까지 했습니다. 흔해진 버버리 브랜드는 가짜 버버리까지 많이 만들어지면서 희소성을 가진 명품 브랜드로서의 가치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1997년 새롭게 영입된 CEO "로즈 마리 브라보"가 경영을 맡게 되면서 버버리는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녀는 이미 미국 백화점 업계에서 오래된 경력과 유통업계에서 유명했습니다. 그녀가 버버리에 오면서 해외에 있던 상표권과 라이센스 사업을 정리하고, 버버리의 소매점 없애고 고급 백화점에만 입점을 시키게 됩니다. 또 남발된 버버리의 체크무늬로 디자인된 상품을 줄입니다. 당시 새로 영입된 로베르토 매니체티 디자이너는 버버리의 상징인 트렌치코트 외에 젊은 층이 좋아하는 패션 디자인 상품으로 확대를 합니다. 체크무늬가 없어진 버버리는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당시 유명한 케이스 모스와 같은 최고의 모델에게 입히고 사진을 찍어 미디어에 노출하게 됩니다. 완전히 달라진 판매방식과 디자인으로 버버리는 살아나게 됩니다.

 

버버리의 부활

당시 버버리의 CEO "로즈 마리 브라보"는 2001년 구찌를 다시 살려낸 톰포트의 오른팔인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버버리로 영입하고 새로운 CEO를 찾게 됩니다. 새로운 CEO는 2006년 "안젤라 아렌츠"가 경영을 맡게 됩니다. "로즈 마리 브라보"는 이렇게 버버리에 업계에서 인정받는 사람들로 영입하게 됩니다. "안젤라 아렌츠"가 부임하여 첫날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임원중 아무도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입지 않은 것을 보고 생각합니다. 150년 넘는 역사의 버버리 브랜드의 시그니처 의상인 트렌치코트의 위상을 살려보려고 합니다. 부임 1년 만에 버버리의 매출은 20% 이상 오르면서 브랜드 이미지도 함께 상승하게 됩니다. 트렌치코트를 기반으로 여러 색상과 젊은 디자인의 고급 코트를 출시하여 다시 버버리 코트는 유명해집니다. 또한 버버리는 디지털 시대에 맡게 패션 브랜드 중 최초로 컬렉션에서 모델이 들이 입고 나온 의상들을 온라인으로 바로 구입할 수 있게 합니다. 2018년에는 스트릿과 럭셔리 패션을 조합하여 새롭게 디자인했다는 평가를 받는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를 영입하게 됩니다. 그가 크레이이티브 책임자로 오게 되면서 새로운 로고와 함께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의 이니셜로 만든 새로운 모노그램을 만들면서 2023년 현재까지 버버리의 트렌디한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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